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입안이 얼얼하고, 땀이 나고, 심지어 눈물까지 흐르는 경험을 해보셨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 과학적으로 따지면 우리가 느끼는 매운맛은 ‘맛’이 아닙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처럼 혀의 미각 세포가 감지하는 다섯 가지 기본 맛에 매운맛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매운맛은 사실 통증에 가깝습니다. 오늘은 매운맛 통증 이유를 3가지로 나눠서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 캡사이신은 통증 수용체를 자극한다
고추가 매운 이유는 캡사이신이라는 성분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캡사이신은 미각 세포가 아니라, 우리 몸 전체에 분포한 TRPV1이라는 수용체와 결합합니다. TRPV1은 원래 뜨거운 열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는 수용체로, 보통 섭씨 43도 이상의 온도에서 활성화되어 우리 뇌에 “뜨겁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캡사이신이 이 TRPV1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마치 실제로 43도 이상의 열이 가해진 것처럼 수용체가 활성화되어버립니다. 실제로는 입안 온도가 전혀 뜨거워지지 않았는데도, 뇌는 “타는 듯이 뜨겁다”는 통증 신호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정말로 입안이 불타는 느낌을 받는 게, 착각이 아니라 우리 몸의 통증 감지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인 셈입니다.
두 번째 이유: TRPV1은 입뿐 아니라 온몸에 퍼져 있다
TRPV1 수용체는 입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도, 위 같은 소화기관은 물론 코나 피부 같은 여러 감각기관에도 넓게 분포해 있습니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입만 얼얼한 게 아니라, 목구멍이 타는 듯하고 속이 쓰리고 심지어 손으로 매운 재료를 만진 후 눈을 비비면 눈이 따가운 것도 다 같은 원리입니다.
이렇게 몸 전체에 분포한 통증 수용체가 한꺼번에 자극되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고 콧물이 흐르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전신 반응까지 동반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이 자극을 실제 위협으로 받아들여서, 체온을 낮추려는 반응(땀 분비)과 통증을 완화하려는 반응(눈물, 콧물)을 동시에 일으키게 됩니다.
세 번째 이유: 사람마다 매운맛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먹는 경우를 자주 보셨을 거예요.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사람마다 TRPV1 수용체의 개수와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수용체가 적은 사람일수록 뇌에 전달되는 통증 신호가 약해서 매운맛에 상대적으로 둔감하게 느끼고, 반대로 수용체가 많은 사람은 같은 캡사이신 양에도 훨씬 뜨겁고 아프게 느낍니다.
흥미로운 점은 심리적인 요인도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먹는 사람은 실제로 통증을 덜 느끼는 경향이 있고, 반대로 매운 음식을 먹기 전부터 겁을 먹으면 통증을 더 크게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다만 매운맛을 자주 먹는다고 해서 개인이 타고난 매운맛 한계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운맛에 자꾸 끌릴까
통증인데도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겨 찾는 이유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캡사이신으로 인한 통증 신호가 반복되면, 뇌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엔돌핀 같은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 엔돌핀이 일종의 쾌감을 만들어내면서, 매운맛이 주는 짜릿함과 스트레스 해소 효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참고로 고추의 매운 정도를 나타내는 스코빌 지수라는 척도가 있는데, 일반적인 청양고추는 수천 단위인 반면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알려진 페퍼X는 300만에 달할 정도로 차이가 큽니다.
스푸트니크에서도 캡사이신과 TRPV1 수용체의 작용 원리를 자세히 다루고 있으니, 더 궁금하신 분들은 스푸트니크 – 우리가 매운맛에 끌리는 과학적 이유를 참고하시는 것도 좋습니다.
매운맛에 화상 입은 듯 얼얼할 때 대처법
매운 음식을 먹고 입안이 너무 얼얼하면 본능적으로 물을 벌컥벌컥 마시게 되는데, 사실 이건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캡사이신은 물에 잘 녹지 않는 지용성 물질이라, 물을 마셔도 입안에 남아있는 캡사이신이 씻겨 나가기보다는 오히려 입안 전체로 퍼지면서 얼얼함이 더 넓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물 대신 우유나 요거트처럼 지방 성분이 있는 음식을 추천합니다. 우유 속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캡사이신을 감싸서 씻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운맛을 훨씬 효과적으로 진정시킬 수 있습니다. 밥이나 빵 같은 탄수화물을 함께 먹는 것도 입안의 캡사이신을 물리적으로 흡수해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치며
매운맛 하나에도 이렇게 정교한 통증 신호 체계가 숨어 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실 거예요. 우리가 맛으로 착각하고 즐기는 그 얼얼함이 사실은 몸이 보내는 통증 신호이고, 그 통증을 뇌가 쾌감으로 바꿔 즐기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매운 음식을 대하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난번 다룬 하품 전염의 원리처럼,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감각 하나하나에도 늘 흥미로운 과학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에 매운 음식을 드실 때는, 그 얼얼함이 사실 미각이 아니라 몸이 보내는 통증 신호라는 사실이 떠오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너무 매워서 힘드실 때는 물보다 우유나 밥을 함께 드시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